김춘산
나라와 가문을 위한 삶 곽한소 표지(완) (출처 : 敬菴全集)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망하였다. 수천년 장구한 역사의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병탄되는 미증유의 변고가 현실화한 것이다.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그 참담한 심정을 곽한소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7월30일-양 9월3일) 이때에 하늘이 스산하고 음침한 비가 내려 고민을 이기지 못하였다. 왜추(倭酋)가 바야흐로 우리 주상(主上)을 도모하여 광무와 융희 연호를 다시는 행할 수 없게 하고 나라의 명맥이 영원히 끊어졌으니 합방은 이미 이루어졌기에 하늘의 기운이 어찌 그렇지 아니 하리요! 8월1일. 돌아오면서 도계를 지나 참봉 김석동을 방문하여 김영장께 편지를 부치고 대교에 이르러 이른바 왜황(倭皇)의 유고(諭告) 문자라는 것을 보았으니, 곧 우리 황상(皇上)을 낮추어 이왕(李王)이라 하고 태상황(太上皇)은 이태왕(李太王)이라 하며 황태자는 왕세자라 운운한 것이었다. 간담이 무너져 죽으려 해도 죽을 곳이 없었다. ······4일. 신문을 얻어 합병의 전말을 상고해 보니 이에 이완용 역적이 주선하여 결국 통감은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다케를 이름)가 되었다. 어찌 당당한 소중화(小中華)가 끝내 짐승 같은 왜적의 속민(屬民)이 되고 문명의 조선이 끝내 일본의 총독부가 되었단 말인가! 마음과 담이 다 떨어지고 찢어졌다.”
「心嶊膽落 欲死無地 心膽尤盡墮裂
간담이 무너져 죽으려 해도 죽을 곳이 없었다. 마음과 담이 다 떨어지고 찢어졌다.」
이런 애끓는 절규는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자식을 잃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 선생님은 이미 자신의 팔이 잘리고 다리가 끊어지고 살을 저미는 고통을 살아서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리라. 멀리서는 견딜 수 없는 비통함을 목숨과 바꿈으로써 국은(國恩)에 보은하려 한 지사들의 소식이 들려오건만, 그것으로 그 모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자결로써 치욕을 끊어내는 사람이나 살아서 치욕을 감내하는 사람이나 그 누가 덜 아프고 누가 더 슬프겠는가. 삼천리강산이 모두 함께 울고 있는 것을.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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