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북새기략》에 나오는 녹둔도
《북새기략》은 홍양호가 1777년(정조1) 10월부터 1년 남짓 함경도 경흥 부사(慶興府使)로 재직하면서 현지에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저술한 《삭방풍토기》를 그의 손자인 홍경모(洪敬謨)가 여러 문헌을 참조하여 내용을 보완하고 체재를 재편하여 편찬한 저술이다.
홍양호는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평안도 관찰사, 이조 판서 등을 두루 지낸 고위 관인이었고,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임할 정도로 인정받은 문장가였다. 소론 탕평론과 강화 양명학파의 영향을 받아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하고자 한 관인 실학자로 평가된다. 두 차례 연경(燕京)에 왕래한 그는 상소를 통해 청나라의 문물을 수용하자는 주장을 펼쳐 북학론자로 분류되며, 청나라의 학자인 기윤(紀昀)과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가 북방 지역을 직접 경험한 것은 정조 즉위 초에 홍국영(洪國榮)이 집권하면서 1777년(정조1) 10월 경흥 부사로 좌천되면서였다. 경흥은 국토 최동북단인 두만강 하구에 있던 군읍으로 현재의 나진(羅津)과 선봉(先鋒), 은덕(恩德)에 해당하는데, 홍양호는 이곳에서 1년 남짓 재직하였다.
《북새기략》은 1843년(헌종9) 전사자(全史字)로 인행(印行)된 《이계집》 외집(外集) 권12에 수록되어 있다. 《이계집》의 발문 등에 의하면, 이 전사자본 《이계집》 50권 22책은 홍양호의 손자인 홍경모가 편차(編次)하여 간행하였다.
《북새기략》은 개개의 정보별로 항목을 나누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의견을 개진하거나 문장을 뽐내기보다 정보를 간결하게 정리해 전달하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북방 지역의 풍속, 역사, 산맥, 하천, 생태, 군사, 산업, 교역, 교통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다.
《북새기략》에는 이러한 다양한 정보가 7편의 글로 정리되었는데, 이러한 구성만으로도 북방 지역에 대한 편찬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북새기략》 편찬자에게 북방은 다소 이질적인 풍속을 가진 곳이지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일가가 일어난 곳이자 부여, 발해, 고려의 옛 강역이던 곳이고, 청나라와 정기적으로 무역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강 건너 만주 지역과 맞닿은 곳이며, 신령스러운 백두산이 있는 곳이었다.
북방 지역에 대한 《북새기략》의 이러한 인식 체계는 당대 지식인의 인식이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북방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새기략》이 북방 지역에 관한 저술의 전범(典範)이 되었다고 평가되어 온 것이다. 《북새기략》에서는 다음 부분에서 녹둔도를 언급하고 있다.
“........흑룡강은 백두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퍅개(愎介) 땅을 거쳐 혼동강과 합류해 바다로 들어간다. 강의 좌우에 허전인(許全人)이
산다. 허전인은 까마귀 고기, 사슴 몸통, 소 다리를 먹는다. 퍅개인도 고기를 먹으며, 개 수레[狗子車]를 짐을 싣고 끄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두만강은 백두산 남쪽 갑산의 천평에서 발원한다. 동쪽으로 흘러 어윤강(魚潤江)이 되며, 우리 육진과 저쪽 땅을 돌아 흐른다. 허항령 북동쪽의 물과 후춘(後春) 남산(南山)의 물이 모두 이 강에 모인다. 남북으로 수삼백 리이며, 동서로 6, 7백 리이다. 경흥(慶興) 녹둔도(鹿屯島)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현재 강의 남쪽은 우리 땅에 속하고, 북쪽은 영고탑에 속한다.
두만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을 슬해(瑟海)라고 부른다. 무이보(撫夷堡)의 서봉대(西烽臺)에 올라 바라보면 청흑색의 물빛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두만강에서 흑룡강까지, 남해(南海)로 가는 거리는 570여 리이다. 남해는, 저들이 지칭하는 남해를 말한다.......“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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