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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5회]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온 복음 - 허황옥과 사도 도마, 그리고 신라의 십자가 -
  • 기사등록 2026-05-05 10:34:11
  • 기사수정 2026-05-24 20: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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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패러다임】

 

한반도의 기독교 역사를 19세기 말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한정 짓는 것은, 고대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해상 교류사를 외면하는 처사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도래는 당시 인도와 가야를 잇는 해상 루트가 실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는 동시대 인도에서 활동한 사도 도마가 한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개연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 있다.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 등의 유물은 이러한 초기 복음의 씨앗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음을 보여주는 물적 증거이다. 

이제 우리는 아집(我執)을 내려놓고 흩어진 역사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1. 허황옥공주의 도래와 파사석탑 : 해로(海路)의 실증적 근거

 

허황옥 공주가 '가야'로 시집 오게 된 사건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그녀의 여정은 매우 구체이며 고고학적 유물로 이를 뒷받침한다.

(출처 : 김수로왕, 우리역사넷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eh/view.do?levelId=eh_n0050_0010)

 

• 역사적 근거 : 허황옥공주가 배에 싣고 온 ‘파사석탑(婆娑石塔)’은 1996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5년 1월 2일에는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유산’으로 승격·지정 고시되었다. 

이 탑을 구성하는 석재는 붉은빛을 띠는 '육릉석'으로,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돌이다. 지질학적 분석 결과, 이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아열대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재임이 확인되었다.

 

 

파사석탑 설명문, 출처: 김해시 공식블로그

파사석탑 전경, 출처: 김해시 공식블로그


 

• 시사점 :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가 배를 타고 가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1세기 당시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잇는 '남방 해로'가 활성화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당시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사도 도마가 동일한 경로를 통해 '땅 끝'인 한반도에 도달했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2. 사도 도마의 인도 사역과 한반도 전래의 개연성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도마는 서기 52년경 인도 남부 말라바르 연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일곱 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현재까지도 인도에는 '도마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한다.

 

• 논리적 추론 : 도마가 인도에서 사역하였던 시기는 허황옥 공주가 가야로 시집온 서기 48년 뒤의 일이다. 당시 인도는 로마 제국과 한나라,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잇는 국제 무역의 허브였다. 복음 전파에 생애를 바친 도마가 상인들이나 사절단을 통해 동방의 끝에 위치한 '가야'의 존재를 인지하고, 해상 루트를 통해 한반도에 발을 들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 물적 단서 : 경북 영주 평은면에서 발견된 암각화(도마상) 하단에는 '타우마(Tauma)'라는 아람어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사도 도마의 본명이며, 그 복식 또한 중동 지역의 전통 의상을 닮고 있어 1세기 복음 전래의 직접적인 지문으로 볼 수 있다.



3. 신라 불국사의 '돌십자가'와 '경교(景敎)'의 흔적

 

초기 기독교의 흔적은 '가야'를 넘어 신라 시대에 이르러 더욱 뚜렷해진다.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는 동방 기독교인 경교가 신라 사회에 스며드는 결정적인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 유물적 근거 :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는 가장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 십자가는 네 귀가 둥근 형태로 중앙아시아와 당나라에서 발견되는 '네스토리우스교(경교)'의 십자가 문양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또한, 경주 외곽에서 출토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상'은 불교의 관음상과는 구도가 전혀 다른 '성모자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 사회적 맥락 :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는 서역 상인들이 드나들던 국제 도시였다. 괘릉의 무인석상에서 볼 수 있듯 서역인의 등용이 자연스러웠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경교는 불교와 공존하며 신라인들의 영적 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초기 복음이 일시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시사한다.



4. 초자연적인 섭리와 인간의 겸손

 

우리는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우를 범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인간의 짧은 지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신비가 가득하다. 


계절마다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이 저마다의 때를 알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생명의 본능이나,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철새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향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감각은 과연 우연일까?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에 묻혀 자신의 수만 배가 넘는 나무로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일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창조적 섭리가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웅변한다.


사도 도마가 이 땅을 밟고, 허황옥 공주가 바다를 건너온 역사 또한 이러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섭리의 한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자연의 기적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교만과 다를 바 없다. 


역사는 '이성'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는 근원적인 사랑과 계획 앞에 겸손히 마음을 열 때 비로소 그 속살을 드러낸다. 

"어떻게 그 옛날에 기독교가 들어올 수 있었겠느냐?"는 의구심은 우리가 세운 편협한 아집(我執)에 불과하다. 


허황옥 공주가 가져온 '파사석탑'이 2,000여년을 버텨 진실을 증언하듯, 영주의 '도마상'과 신라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겸손한 자세로 역사를 마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론 : 열린 마음으로 다시 쓰는 한국 교회사】

 

이제 우리는 개신교와 천주교라는 종파적 담장을 넘어 우리 민족의 영적 시원(始源)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성모 발현'이라는 놀라운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듯, 우리 땅에 새겨진 '초기 기독교의 흔적들' 역시 하늘이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메시지일 수 있다.


결국, 허황옥 공주의 도래는 사도 도마의 전래를 가능케 한 역사적 통로였으며, 신라의 유물들은 그 복음이 이 땅에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물증일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존중하고 연구할 때, 한국 기독교는 200여년의 짧은 역사를 넘어 2,000여년의 깊은 뿌리를 가진 생명력 있는 신앙으로 거듭날 것이다.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이 땅을 밟았을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기리는 것, 그것이 오늘날 진실을 찾는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책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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