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김춘산
협착(狹窄), 그리고 오해
사람은 종종 아픈 곳을 잘못 짚는다.
몸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몇 달 전부터 걸을 때마다 허벅지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이가 들면 으레 찾아오는 근육통쯤으로 생각했다. 오래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 묵직한 통증이 허벅지를 타고 내려왔고, 어느 날은 마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처방을 내렸다.
다리를 주물렀고, 파스를 붙였고, 온찜질도 했다. 유산소 운동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걷기 운동도 더 했다. 근감소증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단백질 섭취도 늘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고 선명해졌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단명은 뜻밖이었다.
‘요추 5번 협착!’
허벅지가 아픈 이유가 허벅지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문제의 근원은 허리에 있었다.
척추 신경이 좁아진 통로에 눌리면서 통증이 다리에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허리에는 그 어떤 신호나 통증도 없었는데 다리에만 통증이 나타난 것이었다.
의사는 허리에 약물 주사를 놓았고, 물리 치료와 마사지가 이어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허벅지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문득 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껏 허벅지만 붙잡고 있었구나!
그래픽 = OpenAI DALL·E 제작 |
그리고 곧 삶의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자주 ‘통증이 나타난 곳’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가.
직장에서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미워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삶에서 견디기 힘든 압박과 고통 속에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상처의 원인은 상대의 인격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협착’이었던 셈이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부부 사이의 냉랭함, 형제 사이의 오해도 표면에 드러난 말과 행동만 바라보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무뚝뚝함 뒤에는 외로움이 숨어 있고, 분노 뒤에는 좌절이 숨어 있으며, 침묵 뒤에는 상처받기 싫은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종종 결과만 보고 사람을 단죄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압박에서 비롯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짧은 문장 하나만 보고 사람을 재단하고, 정치적 견해 하나만 보고 적과 동지로 갈라선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경험과 환경, 두려움과 생존의 기억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현상만 공격하다 보면 사회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더욱 쉽게 돌을 던지게 된다.
병원에서는 나의 상태를 ‘방사통(放射痛)’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통증은 전혀 엉뚱한 부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의 많은 갈등 역시 일종의 방사통인지 모른다.
실제 원인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데, 증상은 전혀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원인을 보지 못한 채 가까이에 보이는 사람을 탓하고, 눈앞의 현상만 붙잡고 씨름한다.
허리의 '협착(狹窄)'은 내게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비유(比喩)'가 되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거친 말이나 냉담한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먼저 생각해보려 한다.
‘저 사람의 마음속 어디가 좁아져 있을까?’
물론 모든 잘못을 이해로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상만 보고 성급히 사람을 미워하는 '오류(誤謬)'만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허벅지를 붙잡고 씨름하던 내가 결국 허리를 치료해야 했듯이,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도 보다 깊은 곳의 원인을 바라볼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몸의 통증은 의사가 치료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협착'과 삶의 오해는 결국 스스로 '성찰(省察)'할 때에만 조금씩 풀려간다.
그리고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눈앞의 현상보다 그 이면의 원인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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