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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경암 곽한소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2 - 경암(敬菴) 곽한소(郭漢紹)
  • 기사등록 2022-09-29 14:54:42
  • 기사수정 2026-05-23 23: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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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한소의 방문사실을 기록한 어윤적의 <극재일기>
    (출처 : 敬菴全集)
1905
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소식은 국내 각지로 전달됐다. 언론인 장지연(張志淵)은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을사조약’ 체결의 전말을 전국에 널리 알렸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확산되었고 을미의병이후 10년만에 다시 의병이 일어나 일본에 대한 저항이 전개되었다. 


이제까지 상소투쟁에 머물렀던 최면암님의 항일운동도 때를 맞춰 인력과 무력을 동원하는 의병투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에 곽한소님은 스승이 포고문을 작성하고 노성 궐리사 강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항일거사를 준비하는 데에 적극 협력하여 인근 각지의 유력인사들을 방문하여 면암 선생님의 계획과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편, 홍성에서는 민종식이 고종의 명을 받아 의병을 일으켰으나 아쉽게도 실패하고 일본군에 잡히고 말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곽한소님은 다음과 같은 시를 쓰셨다.

 

世家喬木一忠臣 

대를 이은 명문의 큰 인물에 충신이 있어


洪府倡兵大義伸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대의를 폈네


再擧未成身先執 

두 번 거사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잡히니


令人遺恨殞心神 

사람들이 한이 남아 낙심케 되네.

 

- 繼聞閔義將叅判宗植被執(이어서 의병대장 참판 민종식이 잡힌 소식을 듣다)


                                                 - 청주곽씨세거공원 中



김춘산기자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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