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산
곽한소는 최익현의 문하에 들어간 후 평생 동안 명망있는 학자, 지사들과 교유하였고 1912년에 일생 동안 자신이 교유한 인물들의 간단한 약전을 정리하고 또 그들에게서 받은 편지등을 부록 형식으로 묶어 『사우종유록師友從遊錄』 이라는 글로 남겨 놓았다. - <나라와 가문을 위한 삶 곽한소>中 (출처 : 敬菴全集) 〈 대나무 〉
곽한소(郭漢紹)
性直心虛內若無 성질이 곧고 속이 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愛彼叢竹立庭衢 대나무를 사랑하여 뜰에다가 심었으며
春色四時閑圃逕 봄날의 사시에는 채소밭 길 한가롭고
魚竿百尺釣江湖 백자의 낚싯대를 강호에 던졌도다
雨際聽棋翁樂者 비 올 때에 바둑소리 듣는 것은 늙은이의 낙이요
館中照月客知夫 객사에 달뜬 것을 나그네는 아는 지
綠梢滴露烟籠葉 푸른 가지에 이슬 오고 잎사귀엔 안개인데
留作山庄一畵圖 산장에 머물면서 한 장의 그림을 지었도다.
「여동창우영물 십이수(與同窓友詠物 十二首) 동창 친구들과 자연을 읊다 12수 中 제2수」
곽한소(郭漢紹). 호는 경암(敬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며, 곽예(郭預) 선생의 22세 손이다.
경암 곽한소 선생께서 남기신 780수의 시 중에서 문복희 교수(가천대학교 한국어문학과)의 논문 “경암 곽한소의 생애와 문학세계 연구(2015)”에 수록된 19수의 시와 선생의 항일투쟁과 애국심이 담겨있는 6수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복희 교수는 “경암은 학문의 경지뿐만 아니라 인품도 고매하고 문장이 우뚝하여 당대의 문인들과 교유하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구한말의 암흑기와 일제강점 시대를 살다 간 지사(志士)요 문장가”라고 밝혔다.
- <청주곽씨세거공원 수정판(2017년 1월 25일 발행)> 中
김춘산 (c44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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